1. 진실의 순간 (Moment of Truth)
2. 돈이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지탱되나? (진실의 순간 2)
3. 미국은 과연 몰락하고 있나? (미국의 몰락과 화폐환상)
4. 미국 패권의 선택
TV에서는 연일 미국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고 느끼는 듯 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정말 몰락하고 있는 것인지는 진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이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폐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지난 글, 아파트와 화폐환상 (아파트 공화국 6), 에서 화폐환상이 어떤 것인지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화폐환상의 개념은 지난 글을 참고해주십시오.
중산층 정도의 시각으로 보자면 증시가 폭락해서 펀드가 반토막이 나는 것은 큰 재앙입니다. 아파트 가격이 반토막이 난다면 더욱 큰 재앙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의 대주주(오너) 정도의 입장에서만 봐도 시각이 달라집니다.
부도날 염려가 없는 탄탄한 대기업 오너 입장에서 회사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큰 재앙일까요?
오히려 헐값에 지분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입니다.
지난 경험을 돌아보아도 IMF 위기 직후처럼 주식가격이 기업가치보다 떨어졌을 때 오너들은 일반 개미투자자들이 내던지는 주식을 헐값에 쓸어담음으로써 지분(기업에 대한 지배권의 크기)을 크게 늘렸습니다.
기업의 사업 내용이 나빠지는 것이 문제이지, 주식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기업의 소유주인 대주주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화폐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격’의 오르내림이 아니라 ‘지분의 크기’라는 개념을 적용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최고의 자산가 그룹에게는 소유한 토지의 가격이 오르내리는 것, 소유한 빌딩의 가격이 오르내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의미있는 것은, 전국 토지의 몇 %를 소유하고 있는가, 핵심 상업지의 빌딩 몇 채를 소유하고 있는가, 와 같은 방식일 것입니다.
아파트에 적용해보자면 아파트 가격의 오르내림은 의미가 없고, 아파트 몇 채를 소유하고 있는가, 가 되겠지요. (하지만 최고의 자산가 그룹에게 아파트를 여러 채 소유하고픈 욕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국가의 통치세력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미국의 패권세력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것이 미국의 세계 패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미국 부동산이 폭락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통념에서 벗어나서 사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30년대 대공황의 경과를 들여다보면, 유럽 각국이 다 극복하고 나서도 미국은 오래 끌었습니다. 미국이 가장 오래, 그리고 혹독하게 대공황을 겪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시 미국의 국민들은 실제로 ‘굶주림’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 단위로 생각해보면 얘기는 또 달라집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굶주렸지만, 대기업들과 최고의 자산가 그룹은 대공황을 거친 결과 소유한 부가 더욱 늘어났습니다.
‘국가’로서 미국의 국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대공황 직후 미국은 2차 대전을 주도했고, 미국의 세계 지배는 더 강해졌습니다.
저는 지난 글들을 통해, 미국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주식시장, 부동산 시장의 폭락)로 인해,미국보다도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들이 더 곤란한 지경에 빠졌음을 설명드렸습니다.
현재까지 나타나는 경제지표들을 보아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달러가치보다 다른 나라의 화폐가치가 더 빠졌습니다.
미국의 부동산보다 영국, 아일랜드 등의 부동산이 더 폭락했습니다.
며칠 전 신문기사에 소개된 IMF의 세계 경제전망에서도 미국보다 유럽, 일본이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했음이 나타납니다.
(4월 17일 매경)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가 미국의 세계 패권에 어떤 타격을 가할 수 있을까요?
가령 세계 최강인 미국의 군사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군비 지출이 어려워서 문제가 될까요?
그렇게 따지면, 다른 나라가 더 폭락했고 다른 나라의 경제가 더 침체됐으니 다른 나라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 미국이 상대적으로 나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세계 각국이 달러가 부족하여 쩔쩔매고 있지만 미국은 달러를 ‘그냥’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큰 시혜를 베풀듯이 통화스왑을 통해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화폐환상에서 벗어나야 사태를 올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화폐환상, 그리고 흥미를 쫓아다니는 미디어의 일방적인 보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도덕이 타락하여 멸망하고 말았다는 소돔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오늘날 미국을 소돔 바라보듯 하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과연 미국이 타락한 소돔일까요?
벌써 시간이 꽤 지나 잊혀지는 듯 합니다만, 02년 미국은 ‘엔론 스캔들’로 떠들썩했습니다.
엔론 스캔들은 에너지 관련 대기업인 엔론이 분식회계를 통해 기업 내용을 속였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은 사건입니다.
‘엔론 스캔들’의 핵심은 상장 대기업이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점인데, 이는 미국 사회에서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기업 엔론은 문을 닫았고, 그 회사의 케네스 레이 회장은 16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엔론의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곳은, 8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5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아서 앤더슨이었는데, 이 일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고 역시 회사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분식회계’는 우리도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들 상당수가 분식회계를 저질렀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대기업들이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았을까요?
그 분식회계의 공범인 우리 회계법인들이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았을까요?
엔론의 케네스 레이 회장이 160년형을 선고받게 된 것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4배의 가중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거짓말이 없었더라도 40년형은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 대기업들의 분식회계 관련하여서도 대기업 CEO나 대주주들의 거짓말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거짓말로 인해 어떤 가중처벌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분식’회계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로서 있을 수 없는 일, 충격적인 일로 여겨지고 엄하게 처벌되는 것입니다.
기업의 CEO나 대주주가 기업 내용과 관련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이유로 해서 있을 수 없는 일, 충격적인 일로 여겨지고 엄하게 처벌되는 것입니다.
작년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 미국에서 ‘메이도프 금융사기사건’이 떠들썩했습니다.
폰지 사기를 벌였던 버나드 메이도프는 이로 인해 현재 최대 150년 징역형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산은 모두 압류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금융사기 사건이 터져도 재산은 그냥 놔두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잠깐 복역하고 나와서 호의호식하며 잘 삽니다.
2007년에 대한항공은 미국에서 항공운송 관련하여 가격담합이 적발되어 3억달러의 벌금을 치러야 했습니다. 작년 11월에도 LG디스플레이가 LCD 가격담합이 적발되어 4억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우리 국내에서도 대기업들의 가격담합 행위는 ‘자주’ 적발됩니다.
미국에서는 별로 자주 적발되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적발될까요?
처벌이 ‘솜방망이’이기 때문입니다.
벌금은 평균 7억원 정도로 세계 각국의 평균치와 비교하여도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결국 적발되어 벌금을 무는 것까지 고려하여도, 가격담합으로 벌어들이는 금액이 훨씬 많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대기업들은 국내에서 가격담합을 계속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적발되겠지요. ‘기꺼이’ 푼돈에 불과한 벌금을 낼 것입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의 소비자들이 다 지는 것입니다.
같은 우리 나라 대기업들이 미국에서는 쉽사리 가격담합을 하지 못합니다. 처벌이 엄중하여 무서우니까요.
미국은 ‘원칙’이 서 있는 나라입니다.
TV에서는 사건 사고 위주로 보도되기 마련이니 우리가 보기에 엉망진창인 듯 보이지만, 분명한 원칙이 서 있는 나라이고 원칙을 어겼을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습니다.
저는 지난 글에서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가 얼마나 되는지 소개해드렸습니다. 미국은 합당한 부동산 보유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주택가격의 상승은 이로 인해 적절하게 제어가 된 것입니다.
지금 너나없이 미국의 부동산 ‘버블’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실상 그 버블의 정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최소한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되는 정도로 적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미국이 소돔일까요?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가 소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